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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제목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인 강화도를가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2.0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544
내용

인천광역시 강화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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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 연계 교과: 3-1, 5-1 사회

● 체험 포인트: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강화의 역사 살펴보기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 가는 길: 자가용=올림픽대로 → 김포 한강로 신도시 IC → 초지대교 → 전등사

● 문의: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625, 전등사 032-937-0125, 역사관 관광안내소 032-932-5464, 고인돌 관광안내소 032-933-3624

● 먹을거리: 편가네된장(된장비빔밥) 032-937-6479, 나룻터숯불장어구이(장어구이) 032-981-1071, 충남서산집(꽃게탕) 032-933-1667, 맛소리(왕갈비탕) 032-937-5551

● 잠자리: 강화 로얄관광호텔 032-427-2000, 서해유스호스텔 032-932-7602, 함허동천 032-937-7878, 일마레펜션 010-5456-1242

● 이색 체험과 축제: 강화고인돌문화축제 5월, 강화도 새우젓축제 10월

● 주변 여행지: 강화 석모도

● 추천 코스: 초지대교 → 초지진 → 전등사 → 강화지석묘 → 강화역사박물관

● 가족여행 팁: 전등사와 지석묘에서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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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만은 알고 가요!

고인돌

고인돌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나타난 돌무덤 형식의 하나로 동북아시아와 서유럽 일대에 걸쳐 많이 나타난다. 한반도의 경우 정확한 숫자를 모를 정도로 고인돌이 많은데 대략 4만 기 정도로 추정된다. 전북 고창처럼 100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떼를 지어 나타나는 곳도 있다. 고인돌에 들어가는 판석의 무게는 적게는 10톤에서 많게는 300톤에 이른다. 거대한 판석을 떼어 내어 무덤까지 옮기려면 수백 명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인돌을 세운 고대 문명은 상당히 조직화된 사회였음을 증명한다.

● 놓치면 안 될 체험거리

강화역사박물관 관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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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은 개국시원부터 청동기시대, 고려, 조선, 근•현대 시기까지 옛 선조가 남긴 문화재를 전시하고, 시청각 장비를 통해 오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면 우리나라 역사를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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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와 함께한 강화도

강화도는 원래 한강, 임진강 등의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강하(江下)로 부르다가 강 아래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의 강화(江華)로 바뀌었다. 《고려사》 등의 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나라를 세운 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고 여기서 천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또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고인돌의 약 50%가 우리나라에 있어서 강화도의 역사가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강화도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섬이 흩어져 있었지만 조선 말기에 엄청난 간척 사업을 시행하여 지금의 땅덩어리를 만들었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에는 몽골의 침략 때문에 잠시나마 이곳으로 천도한 적도 있다. 당시 만들어진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곳은 바다를 통해 서양의 공격을 많이 받았는데, 1866년에 프랑스 함대가 일으킨 병인양요로 전등사의 정족사고에 보관 중이던 《조선왕조의궤》를 약탈당했고(2011년에 반환되었다.), 1871년에 미국함대가 공격해 온 신미양요, 1875년에 일본군함이 쳐들어온 운요호 사건 등 최신식 대포로 무장한 외세의 도발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섬의 주변에는 갑곶돈대,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의 진지가 구축되어 있다.

한적한 숲길을 따라 만나는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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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총 길이 2,300m의 삼랑성 중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등사가 있다. 전등사 주차장은 동문과 남문에 있는데, 동문으로 오르면 삼랑성의 옛 성문을 볼 수 있다. 가파른 길을 따라 식당가를 지나면 매표소 입구에 돌로 만들어진 삼랑성 동문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한적한 숲길을 따라 금세 전등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처의 불법(佛法)인 등불을 전한다는 의미의 전등사(창건 381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사찰로 강화도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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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때의 건축물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대웅보전은 광해군 때 화재로 불타고 1621년에 다시 지어졌는데, 색 바랜 단청과 거친 나뭇결 등이 깊은 멋을 느끼게 한다. 이 건물 처마의 네 모서리를 받치고 있는 작은 나부상이 독특한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대웅전을 짓던 도편수는 주막의 주모와 사랑에 빠져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그녀에게 주고 일이 마무리되면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여인이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 버렸다. 화가 난 도편수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만들어 대웅전의 추녀를 떠받들도록 만들었다. 이런 조각을 넣은 도편수도 대단하지만, 이를 허락한 당시 전등사의 스님은 더 큰 아량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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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안쪽에 모셔진 목조삼존불상 위에는 완주 화암사의 것과 견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닫집이 장식되어 있다. 섬세하게 조각된 극락조와 연꽃,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을 보면 왜 닫집이 걸작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전등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범종이 있는데, 표면에 붉은 녹이 슬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쇠붙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군수물자로 쓰여 약탈당했는데, 그때 전등사의 범종도 떼어 가 버렸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물러간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탈해 간 쇠붙이를 모아 놓은 곳으로 스님들이 범종을 찾으러 갔더니, 전등사의 것은 없고, 무쇠종만 남아 있었다. 결국 이것을 들고 와 전등사에 다시 설치를 하였는데, 1907년 중국 하남성 숭명사에서 만들어진 종으로 측면에 '깨달음의 종소리'라는 글귀가 적혀 있고 종소리가 아주 맑다.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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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고인돌은 고창의 그것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강화도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 유적지를 처음 본 사람들은 드넓은 광장에 덩그러니 단 하나의 돌만 세워져 있어 썰렁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무려 3천 년 전에 50톤이나 되는 큰 돌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현재 100여 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는 강화도는 더욱 당시의 기술과 사회 현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더 자세한 설명과 자료를 보려면 강화역사박물관을 둘러보는 게 좋다.

출처 : 대한민국 대표 주말가족여행
저자 : 박동철 지음
출판사 : 넥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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